빌바오에서 열린 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토트넘 홋스퍼를 상대로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한 유일한 희망으로 유로파리그 우승에 ‘올인’했던 맨유는, 정작 결승 무대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0-1로 무릎 꿇었다. 리옹을 꺾고, 아틀레틱 빌바오의 홈 결승 진출을 저지하며 결승까지 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팀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이로써 맨유는 2025-26시즌 유럽 대항전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35년 만에 단 두 번째로 유럽 무대를 완전히 놓치는 시즌이 되었고, 구단 재정에 1억 파운드에 달하는 직격탄이 예상된다. 이는 단순한 경기력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붕괴의 징후다. 2005년 글레이저가 클럽을 인수하며 떠안은 부채의 그림자가 마침내 본격적으로 드리우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맨유 팬들이 잠시나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 참패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세 가지 희망이 있다.
첫째, 변명의 여지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랄프 랑닉 전 감독이 부임 당시 “이 팀은 10명 이상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발언했을 때, 많은 이들이 비웃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옳았다. 지난 시즌은 운 좋게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위기를 잠시 가렸을 뿐, 실질적인 문제는 그대로였고, 결국 올 시즌 모두 폭로되었다. 유로파리그를 우승했다면 구단 수뇌부는 또다시 ‘부분적 수리’로 위기를 넘기려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제 그럴 여지도 없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 말은 곧 전면적인 스쿼드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둘째, 유럽 대항전에 나가지 않음으로써 확보되는 트레이닝 시간이다. 루벤 아모림 감독의 전술은 상당히 복잡하고 조직적인 훈련을 필요로 하지만, 지금까지는 유럽 일정과 리그, 컵대회가 겹치면서 훈련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주중 일정을 비우게 되었고, 감독이 원하는 방향대로 팀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과거 미켈 아르테타, 위르겐 클롭, 안토니오 콘테 등이 유럽 무대에 나서지 않았던 시즌 동안 전술 정착에 성공하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던 사례처럼, 맨유 역시 이 시간을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셋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제 바닥을 찍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체감하게 됐다는 점이다. 영화 <킥애스> 속 ‘빅 대디’가 히트걸에게 방탄 조끼를 입힌 채 총을 쏘는 장면처럼, 맨유는 이번 결승 참패를 통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현실을 직접 체험했다. 팀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팬들도, 선수들도, 구단도 여전히 존재하며,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한 다시 일어설 여지가 남아 있다.
지금의 상황은 분명 굴욕적이고 참담하지만, 동시에 구단이 지난 10년간 저질렀던 수많은 결정적 실책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선수단을 정리하고, 전술을 정착시키며, 외부의 소음이 줄어든 지금, 맨유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다음 시즌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맨유는 처음으로 진짜 재건의 출발선에 서 있다.
이것이 어쩌면 퍼거슨 은퇴 이후 처음으로 ‘클럽을 다시 만드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시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이 굴욕의 순간일 수 있다.